[삶의 뜨락에서] 꽃피는 계절에
꽃밭 여기저기 숨어있던 꽃들이 좋은 계절을 맞아 감추었던 꽃잎을 보기 좋게 드러내며 웃고 있다. 화가를 유혹하는 아름다운 색채의 잔치가 열리고 있다. 소박한 하얀색에서부터 눈부신 붉은 광채까지 함부로 단정할 수 없는 색깔의 이야기가 저마다의 세상을 향한다. 작은 제비꽃의 보라색을 어떻게 함부로 평할 수 있을까. 그곳에 싹튼 땅과 하늘의 놀라운 생명과 순환을 읽어내면 그냥 지나칠 수 없다. 북쪽 하늘을 향한 붉은 목련의 전설을 담은 손짓은 날리는 꽃잎에 실어보는 꽃피는 계절의 화려한 음악이다. 하나의 생명이 꽃을 피우는 행위는 놀라운 자연의 섭리로 읽힌다. 북구의 짧은 봄날 사이에 솜털을 가득 담은 줄기 끝에 피어난 작고 노란 꽃들은 찬바람 속에서도 얼어붙었던 땅 위에 치열하게 맞이하는 봄 풍경을 완성한다. 산과 들판에 그려지는 보이지 않는 손이 만들어낸 대단한 풍경화다. 우연히 그곳을 지나게 된 발길이라도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생명의 꿈틀거림이 그곳에 있음이다. 꽃을 피우는 순간은 최고의 시간이다. 작은 씨앗에서 시작된 세상을 향한 몸짓이 뿌리를 내리고 땅의 기운을 받아들이고 줄기를 세우고 잎을 내어 자기 세계를 열고 그 속에서 하나의 바램을 실어 꽃잎을 열고 또 다른 세계를 담아낸다. 꽃을 피워냄은 최고의 시간 속에 최고의 소망을 개화시키는 아름다움이다. “좋은 때다”라는 감탄의 말을 가끔 듣는다. 철없는 것들이 철없는 짓을 한다고 웃는 시선을 넘어 그때 그 시간이 얼마나 아름다웠고 또 언제나 아름다운 시간이라는 삶의 숨결을 실은 저절로 나오는 부러움의 언어다. 살아가면서 가장 보기 좋게 보이는 때가 있다. 그 사람의 얼굴이 언제 그렇게 빛이 났던가 하는 때가 있고 그 사람의 움직임이 언제 그렇게 향기가 났던가 하는 때가 있다. 어느 나이 많은 학자가 친구들 다 먼저 보내고 그러나 ‘지금부터는 진짜 아름다운 삶을 살아보자’라는 마음으로 하루를 맞이하는 그때는 훨씬 나중에 피워내는 ‘좋은 때’가 된다. 민들레는 봄날에 좋은 때를 만들고 매화는 눈 내리는 겨울 끝에 좋은 때를 열어가고 낙엽 지는 가을에 가서야 좋은 때를 만드는 향기 높은 국화도 있다. 꽃피는 계절은 늘 열려있다. 좋은 때를 만나면. 개화기라 말해지는 시절이 있다. 길고 긴 어둠의 시간을 보내고 그 시간을 밑거름 삼아 키워내던 꽃망울이 빛이 가득한 시간을 맞아 마구 꽃잎을 피워내듯 온갖 것들이 저마다의 자태를 뽐내면서 여기저기에서 새로운 모습을 드러내는 생명력 넘치는 세월이다. 때를 기다리던 손길들이 오랫동안 염원하던 청사진을 들고 새 세상을 만들어내는 기운찬 시절이다. 개화기를 맞으면 젊음의 기운이 마구 넘쳐난다. 살아온세월의 숫자를 넘어 새 세상을 마주하는 싱싱한 마음들이 살아나는 보기 좋은 계절이다. 꽃피는 계절이다. 세상 소식을 열어본다. 이상한 질병이 이제는 익숙해져 마스크 벗고 다시 모여 떼창하는 모습이 보인다. 경기장에는 많은 관중 앞에 다시 공이 솟구치고 있다. 방탄소년단은 여전히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신나는 음악을 연주하고 있다. 힘센 나라와 작은 나라는 힘겨루기 하며 내일 꿈꾸고 있다. 한 나라의 앞날을 걸고 대장들의 팔씨름이 한창이다. 도시마다 아픈 손가락을 만지며 통증을 달래고 있다. 봄을 맞은 정원에는 만개의 꽃들이 꽃망울을 터뜨리고 있다. 그렇게 세상 소식이 피어나는 것을 바라본다. 꽃피는 계절에 꽃피는 마음으로. 안성남 / 수필가삶의 뜨락에서 계절 실어 꽃잎 북쪽 하늘 자기 세계